[도시경제채널 = 최강호 기자] 나프타 가격이 한 달 반 만에 두 배(652달러→1,341달러/MT)로 폭등하고, 유가 1,979원 시대가 일상이 된 2026년 봄. 정부는 마침내 26조 2,000억 원이라는 거대한 재정 방패를 꺼내 들었다. 중동전쟁발 고유가 위기 대응을 위한 2026년 추가경정예산안이 4월 10일 국회 본회의에서 의결 확정됐으며, 정부안 제출 열흘 만에 통과해 최근 20년 내 최단 기록에 가까운 속도로 처리됐다. 속도는 인상적이다. 다만 속도가 빠를수록 함께 따라와야 할 질문이 있다. 이 돈은 정말 '지금 가장 아픈 곳'을 향하고 있는가.
'선착순 지갑 열기'... 3,256만 명에게 최대 60만 원
소득 기준 하위 70%에 해당하는 3,256만 명에게 1인당 최소 10만 원에서 최대 60만 원의 '고유가 피해 지원금'이 지급될 예정이며, 이 사업에 배정된 예산은 4조 8,000억 원이다. 겉으로 보면 파격이다. 설계의 방향도 나쁘지 않다. 소득 하위 70% 일반은 수도권 10만 원, 비수도권 15만 원, 인구감소지역 중 우대지원지역은 20만 원, 특별지원지역은 25만 원으로, 지방으로 갈수록 취약계층일수록 지원 폭을 두텁게 설계한 것은 고유가·고환율·물가 삼중고 완화라는 취지에 나름 부합한다.
다만 고유가의 직격탄을 맞는 것은 지역 격차만이 아니라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매일 기름을 넣어야 생계를 유지하는 자영업자, 배달 라이더, 장거리 통근자들의 유류비 부담은 단순히 거주지 주소로 계산되지 않는다. "지역별 지원 차등"이라는 구조적 공정성이 개인의 에너지 소비 패턴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는 점은, 향후 제도 보완 과정에서 함께 고민해야 할 지점으로 남는다.
모두의 카드, '반값'이라는 마법 뒤에 가려진 것들
이번 추경에서 가장 뜨거운 환호를 받은 항목은 단연 '모두의 카드(구 K-패스)'의 반값 할인 전환이다. 국민 체감이 가장 즉각적인 대목으로, 기존 K-패스를 개편한 모두의 카드가 일률적 환급률 상향 방식에서 반값 할인으로 전면 전환됐으며, 정액형은 일반 기준 6만 2,000원에서 3만 원, 청년·2자녀·어르신은 5만 5,000원에서 2만 5,000원, 3자녀·저소득은 4만 5,000원에서 2만 2,000원으로 대폭 인하됐다.
수치만 보면 화려하다. 그러나 이 정책이 가장 큰 효과를 발휘하는 대상은 대중교통을 '정기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환경에 있는 사람'이라는 전제가 있다. 서울 도심의 직장인에게 교통비 절감은 즉각적인 혜택이겠지만, 대중교통 인프라가 상대적으로 부족한 농촌 지역 주민이나 이동이 쉽지 않은 고령층에게 '반값 버스'는 아직 닿지 않는 이야기일 수 있다. 고유가 위기의 피해가 가장 집중된 계층과, 이 정책의 실질 수혜 계층이 얼마나 정확히 겹치는지는 찬찬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추경 편성의 명분과 세부 항목 사이의 간극
추경의 긴박한 명분과 일부 세부 편성 항목 사이에서 눈에 밟히는 대목도 있다. 중동 전쟁과 고유가 대응을 명분으로 편성된 추경에 수억 원 규모의 홍보성 예산이 포함된 사실이 일부에서 거론되고 있으며, 지식재산처의 'K-브랜드 국가인증제도 운영 사업' 신규 편성을 두고도 그 시급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위기 대응이라는 무게감 있는 명분을 달고 있는 추경인 만큼, 각 항목의 편성 근거가 더욱 투명하게 설명될 필요가 있다.
26조의 약속, '집행'에서 판가름난다
정부는 분명 이 점을 인식하고 있는 듯하다. 임기근 기획예산처 차관은 "이번 추경은 어려운 시기를 견디고 있는 국민께 정부가 함께하고 있다는 신뢰를 전하는 일"이라며 "재정은 편성보다 집행 과정에서 정책효과가 결정된다"고 강조했다. 고유가 피해지원금은 4월 27일과 5월 18일로 예정된 지급 일정에 맞춰 국고보조금의 80%를 지방자치단체에 미리 내려보내 집행 지연을 최소화한다는 방침이다.
집행의 빠르기와 집행의 정확함은 서로 다른 문제이기도 하다. 정세은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번 추경은 적자국채 발행 없이 초과 세수만을 활용한 것이 특징"이라며 "중동 전쟁으로 인해 피해가 발생한 부분에 지원하는 만큼 민생 경기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결국 이 26조가 '위기 극복의 마중물'로 기억될지는 2주 단위로 집행 상황을 점검하겠다는 정부의 의지가 현장에서 어떻게 실현되느냐에 달려 있다. "재정은 편성보다 집행에서 결정된다"는 차관의 말이 선언을 넘어 현실이 되는 순간, 그때 비로소 26조의 진짜 가치가 드러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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