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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정의 한옥여담] ‘칸’과 ‘다다미’, 공간을 보는 두 개의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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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정의 한옥여담] ‘칸’과 ‘다다미’, 공간을 보는 두 개의 눈

남기정의 한옥여담 칼럼니스트 / 기사승인 : 2025-12-03 16:57:32

[도시경제채널 = 남기정의 한옥여담칼럼니스트]

남기정 칼럼니스트

우리는 집을 이야기할 때 자연스럽게 “몇 평”이라는 말을 꺼냅니다. 공간의 가치는 넓이와 숫자로 환산되고, 그 크기는 곧 자산의 크기처럼 여겨집니다. 그러나 이 익숙한 단위는 사실 우리의 전통에서 비롯된 것이 아닙니다. ‘평’이라는 기준은 일본 전통 가옥의 다다미 두 장에서 유래한 면적 단위이며,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우리의 일상 언어가 되었습니다. 공간을 면적으로 바라보는 습관은 그렇게 우리 삶 속에 깊이 자리 잡았습니다.

이에 반해 한옥의 공간을 이해하는 핵심 개념은 ‘칸(間)’입니다. ‘칸’은 기둥과 기둥 사이의 구조적 간격이자, 동시에 네 개의 기둥으로 둘러싸인 하나의 공간 단위입니다. “정면 3칸, 측면 2칸”이라는 말은 단순한 치수 설명이 아니라, 공간들이 어떻게 연결되고 관계 맺는지를 드러내는 표현입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이 ‘칸’이 결코 고정된 기능으로 묶이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같은 한 칸이 때로는 온돌방이 되고, 때로는 마루가 되며, 문을 열면 마당과 이어지는 열린 공간이 되었습니다. 한옥의 공간은 벽이 아니라 기둥과 사람의 생활이 함께 만들어낸 구조였습니다.

이러한 ‘칸’의 개념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 가운데 하나가 바로 퇴계 이황 선생이 생활했던 도산서당입니다. 도산서당은 크지 않은 규모의 건물이지만, 그 안에는 ‘칸’의 철학이 선명하게 담겨 있습니다. 부엌은 7자, 방은 8자, 공부하는 마루방은 9자의 크기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는 공간을 동일한 규격으로 반복한 것이 아니라, 공간의 용도와 행위에 따라 한 칸의 크기 자체를 달리 설정한 예입니다. 불을 다루는 부엌은 상대적으로 작고 아늑하게, 휴식을 취하는 방은 그보다 조금 넉넉하게, 학문과 사유의 공간인 마루방은 가장 크게 만든 것입니다.

이 구성은 우리 전통 공간에서 ‘칸’이 단순한 구조 단위가 아니라, 삶의 우선순위와 가치관이 반영된 공간의 언어였음을 보여줍니다. 학문과 사색의 공간을 가장 크게 두고, 일상의 공간은 그에 맞춰 절제하는 태도는, 공간이 곧 인간의 삶과 정신을 담아내는 그릇이었음을 분명하게 드러냅니다. 이는 면적이 곧 가치가 되는 오늘날의 공간 인식과는 매우 다른 시선입니다.

반면 일본의 ‘다다미’는 그 성격이 다릅니다. 다다미는 표준화된 크기의 바닥재이며, 방의 크기는 “몇 조(帖)”로 규정됩니다. 이는 일본의 좌식 생활과 습한 기후에 최적화된 물리적 모듈이며, 생활 방식 자체를 규정하는 단위입니다. 다다미 위에서 먹고, 자고, 생활하는 구조 속에서 공간은 면적과 동선 중심으로 구성됩니다. 여기에는 ‘관계’보다는 ‘규격’이 먼저 놓입니다.

이 두 개념의 차이는 단순한 건축 양식의 차이를 넘어, 공간을 바라보는 문화적 시선의 차이를 보여줍니다. 다다미가 몸의 크기와 생활의 효율을 기준으로 설계된 단위라면, ‘칸’은 사람과 사람, 안과 밖, 집과 자연의 관계를 조율하는 단위였습니다. 한옥에서 공간은 얼마만큼 넓은가 보다, 어떻게 열리고 어떻게 이어지는 가가 더 중요했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오랜 시간 ‘칸’의 감각을 잊고 ‘다다미와 평’의 감각에 익숙해졌다는 데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집을 이야기할 때 그 안에서 어떤 삶이 펼쳐지는가 보다, 면적과 시세, 부동산적 가치를 먼저 떠올립니다. 공간은 관계의 그릇이기보다 거래의 수치로 환원됩니다. 그 결과 도시는 점점 더 밀도를 높이고, 주거는 점점 더 규격화됩니다. 넓어진 실내와 달리, 이웃과 공유하고 함께 머물 수 있는 공간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옥의 ‘칸’이 전해주는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공간은 크기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관계로 완성된다는 사실입니다. 한 칸의 방은 사람이 머물 때 비로소 방이 되고, 문을 열어 이웃과 이어질 때 그 순간 또 다른 공간이 됩니다. 이는 공간이 고정된 물체가 아니라, 사람의 행위와 관계에 따라 끊임없이 변하는 살아 있는 무대라는 인식입니다.

이러한 ‘칸’의 정신은 오늘날에도 충분히 현대적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그것은 꼭 전통 한옥의 공간만으로 의미하지 않습니다. 주민이 함께 사용하는 작은 마당, 동네의 공유 정원, 골목 끝의 작은 광장 역시 현대 도시의 ‘칸’이 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공간이 특정 용도로만 규정되지 않고, 필요에 따라 열리고 닫히며 사람과 사람을 잇는 여백으로 작동하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는 이제 새로운 기준으로 건축과 도시를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의 건축과 도시는 얼마나 넓은가”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관계를 품고 있는가”를 기준으로 공간을 평가해야 할 때입니다.

도산서당의 7자, 8자, 9자 공간이 보여주듯, 우리 전통의 ‘칸’은 크기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태도와 가치의 문제였습니다. 공간을 면적으로만 계산하는 시선에서 벗어나, 그 안에 담기는 시간과 관계, 사유와 공동체의 깊이를 다시 생각할 때, 비로소 현대의 집과 도시도 다시 사람의 온기를 회복할 수 있습니다.

“공간은 숫자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살아가는 방식으로 완성됩니다.”
이것이 바로 한옥의 ‘칸’이 오늘의 우리에게 전해주는 가장 오래되고도 새로운 메시지입니다.

[저작권자ⓒ 도시경제채널.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남기정의 한옥여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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